[두 달간의 탐험] 2. 게임 만드는 문턱이 낮아졌다
AI와 함께 게임을 만들며 겪은 시행착오. 만들기는 쉬워졌지만 재미있는지는 직접 해 보고 골라야 했던 기록.
또 같은 실수를 했다
디테일을 끝까지 챙겨 보겠다는 마음으로 게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부딪쳐 보니 AI 덕분에 만드는 문턱이 놀라울 만큼 낮아져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작업들이 화면 안에서 금방 모양을 갖췄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고양이 합치기 게임 ‘무드냥 머지’가 앱스토어 심사를 통과해 출시되었습니다. 내 손으로 빚어낸 게임이 스토어에 올라갔다는 사실에 무척 들떴습니다. 신이 난 나머지 욕심이 앞섰고, 비슷한 고양이 미니게임을 한꺼번에 여러 개 만들어 연달아 심사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줄줄이 거절이었습니다. 사유는 모두 스팸(4.3)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같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앱을 제출하면 개발자 계정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까지 날아왔습니다.
덜컥 겁이 나서 제출했던 목록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절당한 이유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안의 규칙만 조금씩 다를 뿐 앱마다 껍데기가 거의 판박이였습니다. 똑같은 고양이 그림을 여러 곳에 돌려 썼고, 심지어 심사 담당자에게 보내는 메모 문장까지 복사해서 그대로 적어 냈던 겁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조금 멋쩍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로 직전에 블로그와 쇼츠를 자동화로 돌리면서 ‘생각 없이 많이 만들기’로 실패해 놓고, 사람의 손길을 더하겠다고 넘어온 이곳에서조차 똑같은 짓을 반복한 셈이었습니다. 빠르게 찍어 내는 속도에 취해 가장 중요한 본질을 또 놓치고 있었습니다.
멈추고 스스로 세운 기준들
우선 심사를 넣어 두었던 앱들을 전부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비슷비슷하게 찍어 냈던 앱들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경고를 받은 상태에서 무작정 다시 낼 수는 없었기에, 작업을 잠시 멈추고 제 나름대로 세 가지 기준을 새로 세웠습니다.
첫째는 다른 게임과 첫 화면부터 확연히 달라 보여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미 완성된 프로젝트를 복사해서 알맹이만 살짝 바꾸는 방식을 절대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개를 한꺼번에 몰아서 심사 넣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이 기준에 맞춰서 앞서 거절당했던 고양이 쌓기 게임 ‘무드냥 타워’를 아예 백지상태에서 다시 만들었습니다. 다시 심사를 넣었더니, 다행히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애플이 정확히 무엇을 보고 이전에는 거절했고 이번에는 통과시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이 원칙을 지키면서 낸 결과물들은 스팸(4.3) 거절을 다시 받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손으로 붙잡았다, 한붓원정대
한 번 호되게 혼나고 나니 이제야 정말로 작품 하나를 제대로 붙잡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다짐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한붓원정대’입니다. 같은 색을 한 붓으로 길게 이어서 적을 물리치는 퍼즐 모험 게임이었습니다.
처음 기획한 날부터 스토어에 심사를 넣기까지는 4일 반이 걸렸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안에서는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초반에는 입체적인 3D 화면으로 구현하고 있었는데, 작업 중간에 미국 카툰풍의 2D 그림체로 전부 뒤집어엎기도 했습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제 스마트폰에 시험판을 깔아 두고 수시로 플레이해 보았습니다. 손가락으로 화면에 선을 그어 보면서, 끝에 걸리는 부분이나 어색한 점이 있으면 바로 코드를 고쳐서 다시 폰에 설치했습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과 손끝으로 만져 보는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폰을 쥐고 반복해서 플레이하다 보니 책상 앞에서 머리로만 구상할 때는 몰랐던 말들이 입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선을 길게 이어 그었을 때는 “길게 그었을 때 도파민”이라며 혼자 신나 했고, 새로 넣은 냄비 뚜껑 아이템을 써 보고는 “냄비 뚜껑 너무 사기다”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무엇이든 미리 다 알려 주던 화면을 보면서는 “전부 다 미리 보여주면 재미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어 고쳐 나갔습니다.
손으로 만지며 매만진 끝에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 양쪽 모두에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토스 앱 안에서 바로 실행해 즐길 수 있는 미니앱인 앱인토스로도 냈습니다. 토스 쪽 심사는 또 다른 경험이었는데, 소개 문구를 친근한 ‘해요체’로 바꾸라는 식의 반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플랫폼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결이 다르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 작업 방식이 손에 익어서, 화투 패를 이용해 퇴근을 막는 보스를 이기는 ‘퇴근광’도 같은 과정을 거쳐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스마트폰에 담아 두고 수없이 해 보며 고친 끝에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 그리고 앱인토스까지 무사히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만들기 쉬워지니 고르기가 어려워졌다
이렇게 출시된 작품들 뒤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접은 시도들이 훨씬 더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서 폰에 깔아 보고는 아예 포기해 버린 프로토타입이 스무 개 가까이 됩니다.
AI에게 시키면 금방 그럴듯한 화면을 가져오며 “다 됐다”고 말합니다. 모니터로 언뜻 보면 정말 완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 폰에 옮겨서 손으로 눌러 보면 기대와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겉모습만 그럴싸할 뿐 안이 텅 빈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쌓기 게임도 첫 버전은 기본적인 기능을 다 갖추고 있었지만, 실행해 보니 “초등학생이 만든 게임처럼 보인다”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야심 차게 시도했던 오토배틀러 장르인 ‘한낮 활극’은 알아서 싸우는 구조까지는 잘 돌아갔는데,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시스템은 괜찮은데 느낌이 안 와… 뭘 하기 위해서 생긴건지 모르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멈추었습니다.
분식집을 배경으로 한 ‘분식집 러시’는 테스트하다가 “이동하다가 졸았어”라는 말이 나와 접었고,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퍼즐 ‘윗집이 수상해’는 “게임은 괜찮은데 모바일 게임에 어울리진 않네” 싶어서 내려놓았습니다. 그 밖에도 마작이나 블록 퍼즐 같은 여러 시도가 조용히 컴퓨터 폴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반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고치다 보니 비로소 길을 찾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코드가 적힌 카드로 버그를 잡는 ‘SpLinter’가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일반 게임처럼 보이려고 겉모습을 몇 번이나 바꾸었는데, 그럴 때마다 “재밌다는 느낌이 안오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아예 실제 프로그램 코드가 그대로 드러나는 화면으로 바꾸어 보았는데, 그때서야 처음으로 “너무 재밌는데?”라는 감탄이 튀어나왔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분명하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AI 덕분에 무언가를 빚어내는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지만, 그게 정말 재미있는지 아닌지는 기계가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몸소 부딪쳐 보고 지루한지 즐거운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앞선 실험에서 배웠던 ‘마지막 사람의 손길’이 이 영역에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블로그나 쇼츠를 할 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이번에는 그 마지막 손길을 제가 온전히 더해 줄 수 있어서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숫자는 작았다
즐겁게 매달려 내놓은 결과물들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닿는 일은 또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내 손으로 재미를 확인하고 공들여 완성한 앱들도 성적표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들인 정성이 곧바로 사람들의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스토어에 올린 게임들은 앱마다 일주일에 다운로드가 몇 개씩 일어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한 달 동안 앱스토어에서 발생한 수익은 또다시 0원이었습니다. 많은 이용자가 쓰는 토스 앱 안에 들어간 미니앱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주 동안 두 작품을 합쳐서 찾아온 누적 사용자가 스무 명 남짓이었고, 거기서 난 광고 수익은 백 원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초라한 숫자를 보며 무언가를 재미있게 잘 만드는 일과, 그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아무리 혼자 공을 들였다고 해도 가만히 있는 앱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와 줄 리는 없었습니다.
만드는 문턱이 낮아진 덕분에 원 없이 만들어 보고, 또 원 없이 버려 본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완성한 게임들은 스토어에 조용히 남겨 둔 채로, 저는 다시 다음 걸음을 옮겨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지난 12년 동안 본업으로 해 왔던 iOS 앱 개발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려 보았습니다.
상단 사진: Steve A Johnson / Unspla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