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 일기 1
2018.10.31
전 회사에 다니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고양이들이랑 가까이서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못 만나서 아쉽지만 정말 좋은 추억이었다. 퇴사한 후에 나만의 고양이를 키워볼까 하고 이것저것 공부했는데 하면 할수록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그냥 꿈만 꾸는 중이다.
좋았던 그 시절..
그러다가 오늘 친구가 자기는 고양이까진 못 키워도 햄스터는 그래도 키워볼 마음이 있다는 마음에 이기적이지만 나도 뭔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받는 마음의 안정 대비 책임(책성비..?)이 적은 일이 뭐가 있을까 이것저것 찾던 도중에 내 베어 한구석에 적혀있던 물고기 키우기를 다시 보게 되었고 물고기라면 오늘부터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퇴근하고 이마트에 찾아갔다.
마트 자체로도 엄청난데 수족관은 더 엄청나다
수족관 코너에 갔는데 물고기는 많고 직원분은 안 계셨다. 친구들은 구피가 가장 입문하기 좋은 물고기라고 입을 모아 얘기했고, 네이버 블로그엔 구피 키우기에 대한 글이 아주 많아서 틈날 때마다 공부했었기 때문에 구피를 한눈에 알아볼 거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구피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비슷한데 구피가 아닌 것도 있고 돔처럼 생긴 친구도 있고 망둥이처럼 생긴 친구도 있었다.
물갈이할 때 넣는 약품이라고 한다
물고기 먹이는 단풍을 찢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오늘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서 식물 코너까지 걸어갔다가 왔는데 마침 직원분이 오셨다. 처음 키우려는데 뭐 사야 하는지 물어봤더니 어항, 먹이, 물갈이할 때 쓸 약품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구피까지 알아서 다 골라주셨다.
인생 처음 물고기..!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홈다리에서 찾아보니 옐로우, 레드, 네온 블루인 것 같다. 직원분이 설명해주신 물고기 키우는 법은 다음과 같다.
- 사료는 하루에 한 번, 조금씩 주고 처음엔 빠르게 먹는데 천천히 먹을 때 쯤 그만 주면 된다고 한다.
- 물갈이 물은 미지근한 물로 하고 구피랑 같이 산 약품을 반 뚜껑만큼만 넣고 30분 지나면 된다고 한다.
- 물갈이는 기존에 있던 물 반만 버리고 그만큼 채우면 된다고 한다.
- 물갈이는 2주에 한 번.
이때 물갈이할 때 쓸 소쿠리를 하나 사야 했는데 이마트 또 가야 한다. (귀찮다..)
물잡이가 다 된 어항 (아마도..?)
직원분 추천으로 산 어항은 여과기, 모터, 조명 일체형이었는데 홈다리의 다른 분도 이걸로 시작하셨다니 그저 호구만 당한 건 아닌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사했다!
물잡이가 된 (됐다고 생각하는) 물에 구피들을 넣고 한참을 보고, 인스타 하고 있는데 어항에서 이상한 모터 헛도는 소리가 나고 구피들은 가만히 있거나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솔직히 이게 이상한 현상인 줄도 몰랐고 혹시나 해서 검색해봤는데 이상한 거라 해서 막 이것저것 만졌더니 모터에서 거품(산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물고기를 물에 넣어놓고 산소는 공급을 안 하고 좋다고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금방 고쳐서 아직까진 다 잘 살아있지만, 너무 미안해서 간식처럼 밥을 조금 줬다.
미안하다
그러고 나서 어항 이곳저곳을 보니 👇 적어도 여기까지는 물을 채워주세요 👇
라는 글이 있었다.
빠르게 물을 추가하고 나니 어항에서는 모터 소리가 전혀 나지 않고 거품 나오는 소리만 났다.
솔직히 나랑 동생이랑 모터 소리 들으면서 시끄럽지만 구피 보고 힐링하니까 화이트 노이즈라고 생각하자고 얘기했었는데 거품 소리만 나니까 너무 웃겼다.
오래 살아줘..
조명을 계속 켜고 있었는데 열대어는 밤엔 자야 하니까 꺼줘야 한단다. 그래서 조명은 꺼줬는데 켜져 있을 땐 가만히 있다가 꺼지니까 신기하게 잘 돌아다닌다. 2주에 한 번 물갈이, 매일 밥 주기만 지키면 되는데 아직까진 그 이상의 평화로움과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아주 좋고 뿌듯하다.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지금 목표는 일단 안 죽고 한 달 이상 키울 수 있으면 좋겠고 다음은 교배해서 치어를 만나는 것이다. 언젠가는 고정 구피를 만날 수 있기를 빈다.
첫 번째 구피 일기 끝.